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으며
Journalist : 지유철 | Date : 01/06/15 22:39 | view : 195025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읽으며,


나는 아직 자전거 탈 줄을 모른다.
아주 어렸을 때 탔던 세 발 자전거도 자전거라고 쳐 준다면 모를까.
자전거를 못 타니 오토바이 탈 생각은 꿈에도 못 해보았다.
그게 멋있어 보이긴 했지만
오토바이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자전거와 관련하여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아주 오래된 기억이 하나 있다.


내가 5-6살 때였지 싶다.
바로 우리 앞집에 살던 중학생 승만이 형.
그 형이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자기 집 마루 앞에서 피범벅이 된 머리통을 붙잡고
엉엉 울던 그 형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때부터 나는 자전거가 무서웠던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중학생 시절엔
자전거를 배워볼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자전거도 못 타는 놈이란 친구들이 놀림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자전거를 배워야 했는데
내겐 자전거도 없었고, 누구한테 자전거를 빌릴 배짱도 없었다.
물론 우리 시골 촌동네엔 자전거 대여점도 없었다.


언제였던가? 매형으로부터 자전거를 타고 갔다오라는 심부름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다른 때는 그냥 가겠다고 얼버무리는 것이 통했는데
그날은 매형이 막무가내셨다.
물론 나는 길에서 "왜 너는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고 가니?"라는 질문을 받았다.
뭐라 대답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분명한 것은 얼굴이 뻘개졌다는 기억뿐이다.
탈 줄 모른다고 한마디만 하면 되었을 텐데,
난 그게 부끄러웠던 것이다.


지금 내 손에는 『자전거 여행』이란 신간 에세이집이 들려 있다.
내가 좋아하는 저자 김훈이 쓴 책으로 지난 주말에 구입한 책이다.
그는 지금 시사저널의 편집국장으로 있다.
IMF가 터지면서 그는 <시사저널>에서 짤렸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난 그가 '짤렸다'는 표현을 했다는 것을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는 노숙자들 틈에 끼어서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는 글을
하나 발표하더니 그 해 여름엔 어울리지도 않게
<국민일보>로 자리를 옮겼었다.
예상대로 그는 <국민일보>에 오래 있지 않았다.
김훈의 친정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
<한국일보>에서 그를 불렀다는 것을 나는 시사잡지를 통해 알았다.
거기엔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할 것이고,
그것이 신문에 연재될 것이란 이야기도 함께 있었다.
이처럼 김훈은 <한국일보>로 시작하여 현재의 <시사저널>까지,
주로 언론사를 들락거리며 살아 온 문학담당 기자이다.
그 와중에 그는 몇 권의 책을 냈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이란 소설을 썼고,
기행 산문집으로 『풍경과 상처』, 그리고 짧은 문학평을 모은
『내가 읽은 책과 세상』과 『선택과 옹호』가 있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 몇 안 되는 문장가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감성이 아니라 지성에 호소하는
도도한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는 몇 안 되는 문장가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나는 그의 글에 대해 평소 두 가지 생각을 해 왔다.
한 가지는 그가 시론, 그러니까 짧은 칼럼을 대단히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 때 <시사저널>에 시론을 몇 편 썼는 데 정말 좋았었다.
그 칼럼을 기다리는 재미로 <시사저널>을 사 볼 정도로.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그의 글은 낯설다.
꼭 어렵다고는 말할 수도 없지만 쉽게 읽혀지지도 않는다.


대단히 공을 들여 썼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의 단어들은 너무 도도하고
(그는 고색창연한 단어를 써도 옹졸하거나 편협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소재는 우리의 일상과 거리가 너무 멀다.
아니 멀게 느껴진다. 아니 다시 고쳐 말하겠다.
그는 우리의 친근한 일상을 가지고 써도 먼 나라 이야기를 쓰듯 한다.
그게 그의 사유 방식인 것 같은 데 하여튼 쉽지 않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훈에겐
그의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그가 내게 완전히 정복당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를 소개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이 책에 있다.


"저자 김훈의 약력 중 '고려대학교 영문과, 정외과 졸업'은
편집자의 착오로 인한 실수였습니다.
저자의 최종학력은 서울 휘문고등학교 졸업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밝혔듯이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자전거로 전국의 산천을 누비며 쓴 글이다.
그는 때론 혼자서 때로는 사진 기자와 단 둘이서 전국을 여행했다.
물론 그는 고속도로도 달렸지만 시골길을 더 많이 달렸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도 달렸지만
서울의 도심을 관통하기도 했다.


그 사이 풍륜이라 이름 붙인 그의 자전거는 수리를 반복하던 끝에
폐기처분 했고, 그는 또 새로 자전거를 샀다고 한다.
아직도 그의 자전거 여행은 끝나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월부로 또 자전거를 들여놨겠는가.
이미 짐작하겠지만 그는 활동적인 사람은 아니다.
점잖고 무겁고 신중한 사람이다. 신문사에서 밥을 먹었지만
그는 기자라기보단 학인(學人)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가 혼자서 자전거로 전국 여행을 작정했을 때,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자전거로 우리의 땅을 밟아보고 싶었을까?
그러나 그 대답은 사실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의 나이다. 그는 올해로 52살이다.
누가 보더라도 52살은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하기엔 너무 많다.


그러나 그는 해냈다.
나는 그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 흘렸을 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내가 그의 책을 읽는 것은
내용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땀을 추적하는 것이고,
그 땀냄새에 코를 벌렁벌렁거려 보는 것이다.
나는 인적이 없는 길을 오래오래 달리면서 느꼈을 고독을 생각한다.
또한 50이 넘어서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자전거 일주를 생각해내는,
그리고 그것을 기어이 해 내고 마는 그의 젊음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잠시 눈을 돌려 나를 본다. 우리 교회를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모토는 젊은 신앙이 아니던가.
그렇다. 그는 혈기왕성한 사람은 아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도 아니다.
나는 그가 시대의 문제로 감옥에 갇혔다거나
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건강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50이 넘은 젊은 청년 김훈의 개척정신이고 그가 흘린 땀이 아닐까.
50이 넘은 김훈이 그러했다면 지금 나와 젊은 당신들의 해야 할 도전은 무엇이어야 할까. (2000..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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